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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대전 시즌1 넷드링커와 교수

고언 (苦言)을 드려 봅니다

* [190612 17:00 update] 저는 신영준 박사로부터 차단되었습니다. 건강한 토론문화에는 차단이 답이라는 내로남불을 직접 보여 주시었습니다. 그것이 범법자라도 사람에게는 존중이 있어야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인격을 저버린 그를 여전히 사람으로 존중합니다. 그러나 광인 (狂人) 으로 대접하겠습니다.

* 이 글은 신영준 박사님의 글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2389603291077842&set=a.184581804913346&type=3&theater)에 대한 댓글로 2019년 6월 12일 새벽에 올렸던 저의 글입니다. 아침에 삭제 되었기에 이번에는 전체공개로 공유합니다. 신영준 박사님의 본인 담벼락에 대한 권한은 오로지 해당인에게 있는 것이 옳기 때문에, 본인 담벼락의 댓글을 본인이 삭제한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해 구글 문서로 읽으셔도 되고, 같은 내용이므로 스크롤을 내려서 읽으셔도 됩니다.

 

고언 (苦言)을 드려 봅니다

안녕하세요, 홍원의라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고언 (苦言)을 드려 봅니다. 읽어보시고 어떤 조치이든 하시겠지만, 평소에 비난 아닌 비판은 수용한다는 방침을 여러번, 또 누누히 말씀해오신 분과 그 공간에 드리는 말씀이므로 삼가 조심히 말씀 올려봅니다. 글이 투박하여 심기에 불편함을 느끼실까 염려스럽습니다. 혹 저의 미진함으로 잘못 기술된 사실이나 표현을 발견하시면, 혹은 개선함직한 표현을 조언 주신다면 감사히 고치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의 글이라 괘념치

docs.google.com

 

안녕하세요, 홍원의라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고언 (苦言)을 드려 봅니다.

 

읽어보시고 어떤 조치이든 하시겠지만, 평소에 비난 아닌 비판은 수용한다는 방침을 여러번, 또 누누히 말씀해오신 분과 그 공간에 드리는 말씀이므로 삼가 조심히 말씀 올려봅니다. 글이 투박하여 심기에 불편함을 느끼실까 염려스럽습니다. 혹 저의 미진함으로 잘못 기술된 사실이나 표현을 발견하시면, 혹은 개선함직한 표현을 조언 주신다면 감사히 고치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의 글이라 괘념치 마시고 어느 분께서든 말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글이 길기 때문에 구글독스를 사용했고, 댓글은 메뉴의 comment기능을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해당 교수님을 범법자라고까지 표현하셨는데, 범법자를 잡기 전에 미란다 원칙을 읊는 이유를 떠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얼굴을 가려주는 이유는 또 무엇이겠습니까. 극악의 범법자라도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도리이고 예의 아닙니까. 이 말이 범법자를 옹호하자거나 좋은게 좋다는걸로 덮자는 뜻이 아닌 줄은 신박사님의 문해력 훈련하신 분은 이해하실 거라 믿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범법자의 최소인권을 보장하는 법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나, 최소한 사람의 인격은 해치지 말아야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그렇겠지요. 범법자니까 처벌은 하겠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마지노선은 지키려고 노력하는겁니다. 그게 사람 사회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사건으로 어떤 분들은 그 선을 넘었습니다. 그런 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셨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목표대상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막대한 정신적인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힘의 남용입니다.

 

프로그램을 만들면 사소한 버그 하나 때문에 전체 프로그램을 못 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버그 하나가 실은 사소한게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됩니다.

 

“나사는 너무도 싸고 사소할 뿐만 아니라 단순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제, 질에 대한 당신의 인식이 강화됨에 따라, 당신은 이 하나의 개별적이고도 특정한 나사가 싼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순간부터 이 나사는 모터사이클 전체의 판매 가격만큼이나 값이 나가는 소중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나사를 제대로 빼내지 않으면 모터사이클은 실제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나사에 대한 이 같은 재평가가 이루어짐에 따라, 당신은 이에 대한 당신의 지식을 기꺼이 확장하고자 할 것이다.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507”

 

이번 사건에서 신영준 박사님 및 몇몇 소수의 분들이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놓고서 어떤 스텝에 그러한 버그를 넣으셨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잘 말씀해놓고서 해당 교수님의 담벼락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비아냥에 빈정거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비판하는 해당 교수님과 여러분이 다를게 없어집니다. 기껏 잘 해놓고서 스스로 발등을 찍고 품질을 낮추신 겁니다. 이성의 힘으로만 상대를 제압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신영준 박사님께서 문해력에 대해서 누누히 하시던 말씀처럼 이것은 힘입니다. 직접 보여주신 것처럼 실제로 작동하는 힘입니다. 문해력이, 곧 이성이 힘을 의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의 온전함을 둘로 쪼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쪼개든 물질을 쪼개든 개념을 쪼개든,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힘이라 합니다. 곧 권력이 됩니다. 온전함이 쪼개진 쪽은 더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쪼개고 부수는 언어, 분석하고 해체하는 언어입니다. 그것이 문해력 (文解力)입니다. 원래 하나이던 것을 낱개로 풀어 헤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내가 1과 2와 3을 잘못했다는 선언문은 자기고백이기는 하나 사과는 될 수가 없습니다. 사과란 너와 내가 분리된 것이 아님을, 나와 네가 하나의 언어로 반영된 온전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과의 내용이 이성의 언어로 작성될 수 없음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문해력은 힘이고 힘은 둘로 나누는 것인데, 인격은 공감이요 공감은 둘을 합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해집니다. 사과의 언어는 이성이 아니라 공감입니다. 나눌 줄을 안다면 합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과를 이성의 언어로 한다는 것은, 그러니 사과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타인과 하나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힘이 전부가 아닙니다. 문해력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 사는 사회이므로 다른 사람과 내가 하나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인격과 남의 인격을 상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너와 내가 분리되지 않았음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도 문해력 만큼이나 매우 중요합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수만명 사람들이 한꺼번에 생각을 나누기 때문에 자기에게 힘의 언어가 있다면 더더욱 공감의 언어도 함께 훈련하셔야 합니다. 문해력이 아닌 또 다른 힘은 공감력입니다. 쪼개는 언어가 아니라 합치는 언어입니다.

 

아래 동영상의 11분 40초부터입니다.
https://youtu.be/v46boSceYOY

"가서 논리적으로 싸우는 것도 전혀 틀린게 아니에요. 왜. 그사람은 공인이고, 그사람 지지자들이 비이성적인 반응을 세상에 뿌리고 있고, 지금 부조리를 덮을려 그러기 때문에, 좋은게 좋은거라고 넘어갈려 그러기 때문에, 시민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은 그것에 싸워야 됩니다. 촛불만 들고 세상을 싸우고, 그다음에 데모를 하고 시위를 하는 것만 싸우는게 아니라 디지털 사회에서는 논리적인 글을 써서 싸우는 것도 되게 올바른 시민 의식이에요. 거기서 제가 잘못했다 그랬잖아요. 거기서 제가 고작가님한테 뒤지게 혼나고 뒤지게 욕먹은게 뭐냐면은, 비아냥을 했다는거에요. 제가 그래서 뭐 했죠? 사과드렸잖아요. 그다음에 요 앞에 사건에서 OOO 박사님 관련 사건 분들한테도 제가 뭐 싸잡아갖고 너무 조급하게 비아냥을 거렸거든요? 그게 OOO  교수가 빡이 치셔갖고 저를 깐 계기가 된 거였는데, 저는 그 사건을 보고 아, 내가 잘못했구나 이게 사람이 화가 날 수도 있구나 그래서 되게 정중하게 여러 번 사과드렸어요. 글로 사과드리고, 영상으로 사과드리고, ......."

 

어째서 오로지 이성의 언어, 쪼개고 부수는 언어만을 고수하시는가요. 저도 공대인이고 기술을 연구하지만, 기술은 가치에 중립적입니다. 문해력도 그렇습니다. 힘이라는 것이 꼭 그렇습니다.

 

해당 교수님이 신박사님과 고작가님을 모욕한 것을 저도 압니다. 잘못된 것 맞습니다. 그분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요? 신박사님이 동영상으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내가 이만큼 안다. 너네를 혼내준다. 왜냐면 건방지니까. 이런 식인 겁니다. 말과 글을 지배한다는 건 그런 겁니다. 힘을 갖는다는거에요. 그러면 힘을 가졌으면 어떻게 하느냐. 남을 혼내줘야 합니까? 그러면 나와 그가 분리됩니다. 듣는 사람의 기분은 고려가 되지 않습니다. 분리하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교수님이 신박사님의 책을 비난하면서 신박사님의 기분을 고려했을까요? 그랬으면 이 사달이 나지 않았겠지요. 책의 내용을 두고서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게 아니고, 책을 쓴 사람을 비난하고 거꾸러트리려 했기 때문에, 곧 공감없는 문해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사달이 났습니다. 듣는사람의 감정에 눈을 가리고 내 힘을 사용하므로 이런 꼴이 났습니다. 여기서 어떤 분들이 해당 교수님의 담벼락에 사용한 힘은 해당 교수님이 사용했던 힘과 다른 힘입니까? 같은 문해력이고 같은 힘이죠. 그러면 그 분과 여러분이 다른게 무엇입니까? 문해력, 즉 분리하는 힘을 마음껏 사용하고. 공감력, 즉 합치는 힘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를 게 없다는 것은 피해자-가해자 구도에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이것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쪼갤 줄은 아는데 합칠 줄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내가 소송은 안하려고 했는데
너 보여주려고 소송까지 고려해볼게

 

신영준 박사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소송을 누구 보여주려고 합니까? 이것이 공감이 없는 이성의 힘입니다. 해체하고 부수는 힘입니다. 여러분이 신박사님과 졸꾸 하면서 말과 글로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하시는 것 좋습니다. 매우 응원합니다. 저도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힘을 가졌으면 자리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그것을 적절히 쓰거나 안 쓸 줄도 알아야 합니다. 힘을 가졌으면 그것을 남을 거꾸러트리는데 사용하지 마세요. 증오하고 미워하지 마세요. 얕잡아보지도 말고 비아냥거리지도 마세요. 참거짓을 가르고 좌우를 가르는데 애쓰지 마세요. 문해력의 힘과는 다른 힘이 있습니다. 공감력입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소송을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어가 너무 거칠게 와닿습니다.

 

영화 설국열차를 보셨습니까. 거기서 꼬리칸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머리칸을 점령한뒤에 원래 머리칸의 대장이 하는 말이, 열차를 물려줄 후계자를 찾고 있었노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합니다. 왜일까요. 결국에 하는 짓이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문해력을 길러서 말과 글의 힘을 얻자. 그래서 지성의 카르텔, 그 폭력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나아가 견고한 그 성을 깨부수자. 좋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요? 여러분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채로 그대로 갖다가 문해력만 얻으면 힘쓰는 주체만 달라질뿐 결과가 똑같다는 겁니다. 힘을 갖기 전에 그 힘을 왜 원하는지 자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문해력은 그것 자체로 힘이기 때문에, 사용할 자리를 고려하지 않고 건조하게 사용하면 그대로 공격적이 됩니다. 남에게 맞는게 싫어서 헬스를 해갖고 힘을 얻으면 똑같이 남을 때리고 살겠다는 겁니까?

 

“공격성은 남보다 뛰어나고 경쟁력을 발휘하며 승리하려는 욕망의 바탕이 된다. 더 나아가 명예욕이나 도덕성의 기저를 이루기도 한다. 결단력 역시 공격성의 친사회적인 모습이다. 유아기가 끝날 즈음에도 공격적인 기질을 세련되게 다듬지 못한 아이는 주변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 그런 공격적 성향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또래들에게 배척될 확률이 높아서 사회화 기회가 더욱 줄어들고, 결국에는 외톨이로 남게 된다. 또 그들이 성장하면 반사회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공격적 성향이 아무런 효용성이나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데는 공격적 성향이 필요하다.

- 12가지 인생의 법칙 p. 440

 

힘은, 공격성은, 다듬어진 후에 사용되야 합니다. 훌륭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 유능과 인격입니다. 힘과 존중입니다. 문해력과 공감력입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고 예의가 없으면서 옳고 그름만을 논하면 무엇이 됩니까? 지성의 카르텔인지 하는, 여러분이 비판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것과 꼭 같은 결과를 내놓게 됩니다. 말과 글은 힘이고, 힘은 갖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일단 가졌다면 상황을 봐 가면서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하는데, 여기서 어떤 분들은 힘을 사용하면 안 될 곳에다가 힘을 사용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해당 교수님을 고소고발 하시고 기타등등의 일들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는게 아닙니다. 하시는대로 다 하시되, 그런데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없이 하는 거라면 여러분은 진짜로 괴물이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거꾸러트린 그 논리로, 언젠가는 같은 논리로 거꾸러지실 거에요. 여러분이, 또 제가 좋아하는 신영준 박사님이 그렇게 되는 꼴은 못 보겠어서 섣부르게도 어깃장같은 글을 만들어 드리게 되었습니다. 글 중간에 뜬금없지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까짓것 사소한 문제라고 덮지 마세요.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사는 세상에 힘이 두 종류 있다면 하나는 문해력이고 하나는 공감력입니다. 둘은 똑같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공감력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 훈련을 열심히 하시되, 그래서 비판의 글도 쓰시되, 읽는 사람이 모욕이라고 느끼지 않게, 읽으면서 그래도 존중받고 있구나, 읽으면서 사람대접을 받고 있구나, 함께 하자는 말이구나, 논리는 다르지만 우리가 같은 곳을 보고 있구나, 남에게 그런 대접과 존중을 건네주는 글을 쓰는 훈련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공감의 언어도 이성의 언어처럼 훈련할 수가 있습니다.

 

신박사님은 이전 전혀 다른 사건에서 다른 사람들을 모아 비난하는 어법 때문에 곤욕을 치르셨으며 일일이 사과를 드렸노라 말씀을 하시고서 이번 사건에서도 똑같이 행동하셨습니다. 해당 교수님의 담벼락 포스팅을 읽는 [공인이 아니며 문해력 낮으며 비이성적인 사람들]에 대하여서 댓글로 하나하나 비아냥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실수는 반복되면 실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나아가 하대하는 말투나 태도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타도하고 싶어하는 그 카르텔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힘을 가졌고, 누군가 상대를 찾아서, 말로써, 곧 힘으로써 제압한다. 그런 겁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고려하셨다면 논리는 여전히 깊되 비아냥거리실 수는 없었을 겁니다. 박사님의 공격 대상은 박사님과 분리되어야 했기에 분리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박사님이 품는 대상이었다면 공감의 언어를 사용하셨을 겁니다.

 

사람의 말이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세상을 보는 기본 시선의 품질 (quality)을 드러냅니다. 남을 하대하는 사람은 자기도 존중받지 못합니다.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다른 사람을 (그것이 범법자라고 해도) 디폴트로 사람으로서의 존중이 아니라 하대 및 막대한다는 것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공감이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깨부수고 짓이기는 힘만 보았을 뿐입니다.

 

남의 온라인 공간에 가서 논리적으로 싸우는 것도 전혀 틀린게 아니라고요? 틀린게 아닌건 맞습니다만 매우 부족한 설명입니다. ‘읽는 사람의 인격과 감정을 북돋으면서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조던 피터슨 식으로 말하면 사회화된 식으로 공격력을 발휘하셔야 합니다. 공감력과 함께 문해력을 발휘하셔야 합니다. 밑도끝도 없이 논리적으로 사실관계만 들이밀면 무례한 종교집단이라는 손가락질만 받게 됩니다. 우리 집단과 그쪽 집단이 분리됩니다. 나는 그래도 좋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니 바른말 하다가 듣는 욕은 달게 받겠다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이것은 미련한 일에 들어갑니다. 바쁘고 할일 많은 분들이 왜 괜한 비아냥을 하고 감정싸움을 만들어서 여러분 목표하시는 바에 불필요한 걸림돌을 일부러 만들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멀쩡히 졸꾸 하시면서 왜 그밖의 사람들로부터는 광신도 집단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합니까? 안 그래도 되는 것을 자초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유능은 보여주셨으되 공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상식적인 인격에 역행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집단과 여러분 아닌 집단이 눈에 뜨이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공감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감을 무엇을 보고 아는가요? 구사하는 언어로 재어봅니다. 언어에 분리는 있으되 합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나와 너는 끝까지 분리된 채입니다. 이쪽편과 저쪽편이 명확히 분리된 채로는 누구도 이 사건을 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계속 서로를 비난하거나 증오하게 됩니다. 공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언제까지고 서로를 증오하고 저주를 퍼붓게 됩니다. 비아냥거리고 하대하며 막대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문해력을 졸꾸 하셔서 이루기 원하는 세상이 그런 것인가요?

 

사람을 상대하는데 사람을 안 보고 논리만을 붙들고 있는 겁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 특히 공격 대상을 포괄하는 사람 집단이 느낄 감정이나 인격에 무신경하므로 비아냥이라는 색깔의 언어가 나옵니다. 공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은 여러분 말로는 범법자고 공인이므로 그랬다손 치더라도, 저쪽 담벼락에 있던 공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같은 짓을 하셨습니다. 잘못하신겁니다. 저에게는 캡쳐본이 있지만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싸움을 걸기 위해 이 글을 쓰는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구하고자 함입니다. 여기서 구하는 이해가 해당 교수님을 구제하자는 식의 좋은게 좋은거라는 말이 아닌 줄도 이해해주실 거라 다시금 말씀드려봅니다.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신영준 박사님과 같은 문해력을 향해서 글쓰기 연습을 하고 싶었을 어떤 분들이, 정의구현을 향하여 이런 식으로 돌격앞으로 해서, 해당 교수님 담벼락에다가 폭압적인 자기만의 글쓰기 실험을 했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을 아예 없는 것으로 보시는지, 문해력만 높으면 괴물이어도 된다는 것인지, 저는 눈앞이 캄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공감은 중요합니다. 우리집단 아닌 집단에 대한 공감이 더욱 중요합니다. 집단의 안과 밖이라는건 아주 눈에 두드러지는 분리입니다. 문해력 식으로 표현하면 어리석고 우둔한 말과 글에 해당합니다. 문해력 제로라는 말처럼, 공감력 제로라는 말입니다. 문해력을 졸꾸 하심은 좋으나, 공감력도 함께 하시기를 저는 가슴 깊이 바랍니다.

 

저는 오래전 놀고먹고 헤메이던 시절에 신영준 박사님께 은혜를 입은 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정열적으로 활동하시고, 하나하나 짚는 말씀이 틀린게 하나 없고, 문해력이나 지식의 카르텔이나 기타등등의 말씀에 저는 모두 동의합니다. 박사님의 유능함 만큼은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매우 좋으나 그 절차가 매우 성급하여서, 정말 해소가 필요한 불화에만 힘을 집중해도 할일 많고 어려울 것인데 괜히 안 만들어도 될 불화를 일부러 일으켜서 스스로의 발목을 잡으신다는 것이 그것이 저는 지극히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꿀을 얻으려면 벌통을 차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나오는 말입니다.

 

박사님은 비아냥을 섞어서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어법을 종종 구사하십니다. 하시는 일이 거의 시민운동적인 일을 하시는데, 적이 없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일부러 적극적으로 적을 늘리면서 본인의 추구하시는 바에 걸림돌을 만드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저는 고민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응원하던 1인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박사님의 문해력과 쌍을 이루는 공감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신영준 박사님의 사과를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신영준 박사님께서 비아냥으로 댓글을 달아서 마음의 상처를 주셨을 여러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에게요. 그중에 해당 교수님도 있기는 할 터이지만 그보다는 문해력 낮은 비공인이며 괜한 비아냥을 들어서 여러분에게 등을 돌렸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문해의 언어가 아니라 공감의 언어로 말씀 주시기를 감히 청합니다. 듣기 싫은 소리이므로 고언 (苦言) 입니다.

 

감히 조언드리건대 사과의 언어란 내가 1번2번3번4번을 잘못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공대생의 선언문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이성의 언어로 기술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 이의 입장에서 우리가 분리되지 않았구나, 함께 아플 수 있구나 하는 공감의 언어입니다. 문해력이 아니라 공감력입니다. 어려운 것이지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글을 줄일까 합니다. 저도 제가 왜 이러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박사님께 은혜를 입었고, 기대가 컸고, 그래서 더 실망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사님의 애쓰심에 제가 공감하고 있는바가 크므로 그러한듯 합니다. 그래서 남의 일처럼 쉬이 넘겨버리지를 못하고 장문의 편지글을 쓰고 있는 것인듯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이 글이 의미하는바가 무엇인지 납득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멀리 보시고, 신중하게, 또 지금까지처럼 지혜롭게 걸어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 글은 본래 박사님께 1:1채팅으로 드렸던 것이나, 바쁘신 이유에서인지 읽지 않으시므로 같은 맥락에 글을 좀 길게 다듬어서 공개글로 올립니다. 모쪼록 여러분 졸꾸 하심을 응원하며, 하시는 일에 내내 평안이, 또 성장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019. 06. 12. 홍원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