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취미로 글을 씁니다. 책을 내고 작가가 되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씁니다. 언제 쓰는가 하면 아무때나 씁니다. 얼마나 쓰는가 하면 마음 가는 만큼 씁니다. 무엇을 쓰는가 하면 제 마음을 씁니다. 거기에는 규칙도 제약도 없습니다. 풀밭에 앉은 잠자리를 묘사하는 글이란, 실은 풀밭의 잠자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 비친 잠자리를 그리는 셈입니다.

글 연습이란 실은 자기 마음에 내비치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연습입니다. 글도 그렇고, 말도 그렇습니다. 좋은 글이란,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스테디셀러가 되거나 큰 문학상을 수상한 글이 아니라, 쓴 사람의 진심 (眞心=참된 마음)이 겉으로 내비치는 글입니다.
그걸로 뭘 하나요? 그러면 돈이 되나요? 그러면 내 블로그 방문자수가 늘어나나요?
분야를 막론하고, 공부는 자기 마음을 다스려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로 귀결이 됩니다. 글을 통해서, 춤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그림을 통해서, 공식을 통해서, 또 무엇을 통해서, 자기 마음의 미세한 흔들림을 감지하고 겉으로 표현하여 알아채는 과정이 공부입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그래왔습니다. 색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슨 분야를 공부하시던 관계없이, 공부란 더욱 정밀한 리트머스 시험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무엇에 대하여? 자기 마음에 대하여.

내 마음이 무엇을 보는 중인지, 내 마음이 그것을 얼마나 불편하게 보는지, 내 마음이 그것을 얼마나 편하게 보는지, 내 마음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요동치는지, 그 마음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글의 수준이나 창의성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잘난 글은 상받은 글이고 못난 글은 상못받은 글이겠지만, 좋은 글이란 투명한 글이고 나쁜 글이란 불투명한 글입니다. 불투명한 글이란 ~인 척 하는 글입니다. 원래 A인데 B처럼 적으면 그것은 상을 받았어도 나쁜 글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각자가 전부 다른 생을 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는 글을 쓰는 한 독자적인 글이 나옵니다. 사람 마음은 원래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두고도 오 분 전의 마음이 다르고 십 분 후의 마음이 다릅니다. 글을 투명하게 적는 한 얼마든지 계속 다른 글이 나옵니다. 그렇게 평생을 갑니다. 그래서 남과 다른 글, 남과 다른 서평, 남과 다른 독후감, 남과 다른 글짓기를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투명한 글을 쓰는 한은 남과 다른 글이 나옵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글만 그런게 아니라 인생도 그러합니다. 내가 내 마음에 투명한 인생을 사는 한, 나는 자연히 남과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내가 불투명한 인생을 사는 한, 나는 억지로 남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비싼 학원이나 유별난 빡독은 오히려 남과 같은 인생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공부는 단지 자기 마음의 투명한 내비침에 달린 문제입니다.
활자를 가지고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그려봅니다. 일기장에, 단 한 문장을 쓰더라도, 그것을 오롯이 투명하게 적어봅니다. 그게 글이고, 그게 글쓰기 수업의 전부입니다. 한 문장을 적어보고, 묻습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투명하게 보이는 문장인가? 갸우뚱. 그리고 문장을 또 적어봅니다. 또 물어봅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투명하게 보이는 문장인가? 갸우뚱. 글쓰기란 그게 전부입니다. 빡세게 독서를 하고 서평을 쓰고 검사를 받고 자시고가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은 가만 놔두어도 자연히 좋음을 지향하게 마련입니다. 내 마음을 투명한 문장으로 적었는데 그게 울퉁불퉁하고 지저분해 보인다면, 본인이 그걸 좋게 볼 리가 없습니다. 본인이 알아챘으면 된 것입니다. 남이 점수를 매겨줄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쓴 글이 울퉁불퉁하면 내 마음이 불편하므로 자연히 그것을 다듬고 싶어집니다. 좀 다듬어 봅니다. 그게 글 공부입니다. 글이 자기 마음을 투명하게 그려내는 한, 글을 다듬으면서 자기 마음도 따라서 다듬어집니다. 그래서 공부를 마음수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글로 예를 들었지만 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공부한다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공부는 하는게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영어공부를 해야지, 수학공부를 해야지, 책을 읽어야지, 빡독 (빡빡하게 독서)을 해야지, 그렇게 해야지 시리즈로는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공부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조각을 합니다. 조각가가 망치를 들고 돌덩이를 두들기면서 주의를 기울이는 한 가지는, 이 돌덩이가 내 마음을 투명하게 보이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뿐입니다. 조각가의 마음이 손을 타고 투명하게 내비치는 한은, 일부러 이래야지 저래야지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물이 컵에 담겨서 자연히 컵의 모양이 되고, 물이 잔에 담겨서 자연히 잔의 모양이 되듯, 돌덩이는 조각가의 마음을 따라서 모양새가 갖추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조각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투명하게 비우는 한 그렇습니다.

물처럼 like water
마음을 비우고, empty your mind,
형태를 없애고, be formless,
모양을 없애고, be shapeless
인제 물을 컵에 담으면 그것은 컵이 되고; Now you put water in a cup, it becomes the cup;
인제 그것을 병에 담으면 그것은 병이 되고; you put water into a bottle it becomes the bottle;
그것을 주전자에 담으면 그것은 주전자가 되고; you put it in a teapot it becomes the teapot.
인제 물은 흐르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고 Now water can flow or it can crash.
물이 되시게 아아 친구여 Be water, my friend.
- 리소룡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하기 전에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을 나는 끄집어낸 것 뿐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투명하게 내비치는 마음으로, 어떤 형상을, 투명하게, 단지 투명하게 돌에다 들이대면, 돌은 마음을 따라서 조각되어집니다. 글도 그렇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내 마음을 따라서 쓰여지게 되어집니다. 좋은 글이란 마음이 투명하게 내비치는 글, 단지 그것 뿐입니다.

이 이야기가 전혀 다른 시대와 문화를 살았던 위대한 공공예술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1475 - 1564)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는 외관상 초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조각 재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일을 위탁받으면 대리석 덩어리에서 작품이 보일 때까지 그냥 기다린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이라곤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 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목수 경의 경우처럼 재료 자체가 예술 과정을 명령한다는 느낌이 있다. 그 예술가가 공헌하는 것은 최소한의 것으로 묘사되고, 그의 창조적 행위는 전혀 힘들이지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
-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p.59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
-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 : 디자인명언22
[디자인 명언-22]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 미켈란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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