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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대전 시즌1 넷드링커와 교수

의적 광꺽정 스토리 플롯

저의 비루한 블로그에서 여태 논해왔던 글에서는, 광인의 강력한 문해력으로 뒤틀어진 사건의 구도를 교수의 입장에서 접근해 풀어보았습니다. 그것이 [몰래카메라 스토리 플롯]입니다. 이 플롯에서는 교수가 피해자이며 광인이 가해자입니다.

 

몰래카메라 스토리 플롯

사건의 내막을 잘 모르시는 분은 아래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내용이 긴 편입니다. 사건의 내막 이전까지는 글을 읽는 분이 사건의 내막을 대강 알고 계시다고 가정하고 글을 썼습니다. 내용을 대강 알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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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우리가 광인의 문해력 세상으로 들어가봅니다. 광인이 교수에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된 플롯은, 제가 이름 붙이는 바 [의적 광꺽정 스토리 플롯] 입니다. 이 플롯에서는 광인이 피해자이며 교수는 가해자가 됩니다. 한번 살펴봅니다.

광인은 교수를 단죄하면서 애초부터 높은 자리에만 앉아서 탁상놀음 거드름을 하는 사람을 자기가 힘으로 짓이겨놓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광꺽정의 시각입니다. 의적이 사또를 때려눕히면 그것은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경국대전 법전의 조항으로 따지자면 그것은 범법일 것이나, 우리가 어릴 적 전래동화에서 감명을 받은 부분은 무엇입니까. 임꺽정은 사또를 때려서 쫒아내고 백성에게 쌀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전래동화를 읽으면서 임꺽정을 범법자라고 이야기하나요? 

광인이 보는 교수란, 높은 곳에 앉아서 평소에는 남한테 엄하게 굴다가 정작 자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감투를 벗어던지고 도망치는 졸개 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사또를 물먹인 후에 힘껏 비아냥거렸던 것입니다. 광꺽정의 입장입니다. 

 

비아냥거림의 의미

빈정거림, 혹은 비아냥 이라는 표현이 사람 입에서 나오는 경우는 어떠한 것이며 이게 왜 발생하는지, 이 사건에서 이게 왜 중요한 의미인 것인지 말씀을 드려봅니다. 자료부터 보시죠. 저는 짐승과 달라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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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전 글에서도 살펴 보았지만, 그에게는 사과 뿐 아니라 어떤 말도 겉으로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제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광인이 교수는 왜 사과를 안하나? 하면서 몰아붙일 때, 광인은 교수가 '감투를 빠르게 벗어던지고 도망침' 을 두고서 비아냥거렸던 것입니다.

 

교수는 왜 사과를 안 할까?

저쪽에서 계속 물고 늘어지는 트집이 'OOO교수는 사과를 안한다' 거든요. 저 봐라 카르텔 맞지. 이거에요. 여러분이 OOO교수 입장이라고 생각해보세요. 페북에 친구공개로 뭐라 말을 하다가 앗차 싶어서 한시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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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이 부수겠다는 카르텔이라는 개념은, 그래서 조선의 탐관오리 집단과 같은 개념입니다. 임꺽정이 뭡니까. 그시절로 말하면 법 밖에서 탐관오리를 엄벌하는 조직폭력집단입니다광인이 바로 그런 역할의 온라인 수장입니다광인이 스스로를 보는 캐릭터는 임꺽정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만큼은 그를 광꺽정이라고 불러봅니다. 조선시대 통치기구 입장에서만 본다면 광꺽정은 범법자입니다. 그런데 백성에게 실제로 득이 되는 것은 광꺽정입니다. 탐관오리는 백성에게 해가 됩니다. 그러면 뭡니까. 뭐가 옳고 그른 겁니까입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제는 입장이란 무엇인지를 제가 읊어봅니다. 입장 (立場). 서있는 자리 라는 뜻입니다. 내가 보는 시선을 둘러싸고 있는 문맥 이라는 뜻입니다. 이전의 계란후라이론에서 저는 후라이는 물처럼 흐르는 것이라 했습니다. 후라이에게는 문맥이 있습니다. 후라이가 처한 입장이 무엇인가에 따라 좋은 후라이도 되고 나쁜 후라이도 됩니다, 후라이의 문맥, 곧 후라이의 입장 입니다.

 

물이 고이면 생기는 일

여러분께 말씀을 하나 드려봅니다... 왜냐면 이 블로그는 저의 개인 블로그이며 심란함을 썰푸는 용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심란하면 썰을 푸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 이름도 썰팔이입니다. 계란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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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은 중요합니다. 사물을 이해하는 데는 수 많은 입장이 동시에 한 곳에서 중첩되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입장을 고수한다면 그래서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왜곡이 일어납니다. 편이 갈라집니다. 다른 한편으로 입장의 동일함은 관계의 상한 (上限) 입니다. 우리가 같은 입장에 있다면 그 관계에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관계는 최고의 상태가 됩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고(故)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시대와 사회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처한 위치가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의 출발은 대상과 내가 이미 맺고 있는 관계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검은 피부에 대한 말콤X의 관계, 알제리에 대한 프란츠 파농의 관계….
…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가운데

이제 광꺽정의 입장으로 돌아와 봅니다. 광꺽정의 눈에는 세상이 이렇게 비칠 것이라 저는 봅니다.

젊은이들 백성 꾸러기들
어른들 탐관오리 적폐의 카르텔

구도에서 광꺽정이 등장하는 입니다광인이 교수를 공격한 것은 법의 입장에서 잘못입니다. 그러면 백성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입니까? 

구도 밖에서 보면 범법입니다 구도 안에서 보면 의로운 일이 됩니다여러분이 광인에게 돌을 던진다는 것은, 여러분이 저 구도 밖에다 입장을 두고서 보신다는 뜻입니다. 탐관오리의 입장에서 광꺽정을 보기 때문에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 광인을 마음으로 응원한다면, 여러분이 저 구도 안에 입장을 두고 보신다는 뜻입니다. 백성의 입장에서 광꺽정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게 돌을 던질 수가 있습니까? 둘 중에 무엇이 옳습니까제가 또 읊어 봅니다.

세상에는 고정된 규칙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수천가지의 서로 다른 입장이 얽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 내가 우연히 무엇을 집어드냐에 따라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맥락을 벗어난 절대적인 선과 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믿는 바에 따라서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심지어 중력 이론조차 그렇습니다. 믿겨지시나요?

"글쎄... 내 예상인데 말이야, 누군가가 이 문제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하게 되면, 돌고 돈 다음 다시 또 돌고 돌아 결국에는 단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겠지. 중력의 법칙과 중력 그 자체는 아이작 뉴턴이 말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결론 말이야. 다른 어떤 결론 가운데 이만큼 이치에 닿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면...." 존이 끼어들기 전에 말을 잇는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면,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을 빼놓고는 중력의 법칙이라는 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이건 바로 유령과도 같은 거지! 우리 모두는 대단히 오만하고 자만심에 가득 찬 사람들이라서 남들의 유령을 헐뜯는 데는 선수지만, 우리들 자신의 유령에 대해서는 상대와 마찬가지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야만적이고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멍청이들인 셈이지."
"그럼, 왜 모든 사람들이 중력의 법칙을 믿지?"
"집단 최면이라고 해야겠지. '교육'이라고 알려진 바로 그 정통적인 방식의 집단 최면을 통해서 말이야."
"그럼 선생들이 아이들에게 최면을 걸어 중력의 법칙을 믿도록 한다는 말인가?"
"물론이지."
"그건 터무니없는 생각이야."
"교실에서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지? 모든 교육학자들이 그 점을 강조해. 그런데 어떤 교육학자도 그게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지 않아."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p.75 - 76


우리가 이 사태에 대하여 결론을 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저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결과를 후에 관찰한다면, 유령 하나에 사로잡혀서 다른 유령의 존재를 인지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나는 오로지 애초에 집어든 바로 그 입장 하나만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존재하였는가는 나에게 아예 인지조차 되지 않습니다. 먼저 구분하면 그즉시 나의 이해에는 왜곡이 발생합니다.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왜곡이 없이 전부를 수가 있습니다. 결론을 내지 마세요살펴보세요. 단지 주의만을 가만히 기울이세요. 그러면 보게 되고, 보게 되면 알게 됩니다. 결론으로부터,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주의attentiion는 집중concentration과 다르다. 집중은 배제다. 하지만 주의는 완전히 아는 것을 뜻하며,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말하는 바에 관해 모를 뿐만 아니라 주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즉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색깔들, 사람들, 나무의 생김새, 구름, 물의 운동에 대해 알지 못한다. (……) 앎은 방 안에서 뱀과 더불어 사는 것과 같다. 뱀과 같이 방 안에 살 때 우리는 그것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이 내는 극히 작은 소리에도 매우 민감해진다. 그런 주의력의 상태가 바로 ‘온 힘 (total energy)’이다. 그런 앎 속에서 자신의 전체성은 한 순간에 드러난다.”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광인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페북에서 줄줄이 차단박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행위가 이제는 이해되실 겁니다. 그는 밤중에 산에서 활동하는 의적 두목이기 때문입니다. 수호지의 양산박 같은 옛날 스토리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의적 두목은 대낮에 마을을 활개치고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산에서 거주하며 평소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내팽개쳐진 사람들, 착한 사람들을 있는대로 거두어 자기 힘이 닿는대로 힘껏 보살피다가, 본인 판단에 필요할 때에 산 아래로 내려와 사또를 공격하고 다시 산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그가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본거지인 산채 (=페북)로부터 차단박는 이유입니다. 스스로 고립되는 의적 활동이 그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광인이 지탄받는 이유 중, 유투브 등에서 말투가 고압적이며 공격적 (호전적)이라는 것 역시도 이제는 이해되실 겁니다. 산에서 활동하는 의적 두목이 자기가 돌보는 부하들에게 높임말 쓰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그가 선택한 그의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입니다.